자본주의의 우월함을 느끼는 방문 목적
여름방학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중국의 난징시에 있는 동남대학교와 몇몇 도시를 학교 일부 지원으로 방문할 예정인데 갈 수 있는 학생들을 모을 수 있겠냐고…다른 학부 학생들도 참석한다고 한다.
나를 포함 우리 과에서만 총 7명이 참석했고, 인솔교수님을 포함해서 타과 학생들까지 16명이 참가를 했다.
일단 학교에서 지원하는 취지는 공산주의 국가에 방문해봄으로써 자본주의, 자유주의 국가가 얼마나 더 나은지 체험하게 한다는 것. (그건 중요하지 않다…첫 해외여행이다.)
첫 방문지 베이징
베이징 공항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의 첫 느낌은 숨이 턱 막히는 날씨였다.
너무 더워서 숨을 못쉰다고 해야하나…가이드의 말로는 40도가 넘으면 공무원들이나 기업이 쉬어야 하기때문에 일기예보에서는 아무리 더워도 절대 40도가 넘는다고 예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1. 천단공원(天坛公园)
이 곳은 명, 청시디에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도교 사당이자 제단이라고 한다.


천단공원 기년전((祈年殿) 앞에서 단체사진
이 때 동행했던 타과 학생들은 미대생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2. 베이징덕 식당
그 유명한 베이징덕을 먹어보다니…
식당에 들어가니 서빙을 하는 여종업원이 베이징덕을 밀전병에 싸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걸 근처에 있던 내게 먹여주었다. (가이드가 팁을 주라고 하더라.)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 소스와 고기맛이 일품이었다.

3. 식당에 화장실이 없다!!!
저녁을 먹으러 간 중식당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여기저기 온통 벌건 기둥에 높은 천정, 수 많은 사람들로 가득.
그런데 기름진 중국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대략난감.
급히 식당 화장실에 갔는데…
헉! 칸막이만 있고 화장실에 문이 없다.
와…아무리 급해도 여기선 도저히 볼 일은 못보겠더라.
참고 참고 호텔에 가서 일을 봤다.
4. 만리장성


끝없이 펼쳐진 만리장성이라니…여기서의 에피소드는 어떤 관광객이 영어로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하나둘셋! 했더니 상대방이 어? 한국분이시네? 하더라.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만난 한국사람이라니.
5. 명13릉(明十三陵)

이 곳은 명나라 황제 13인의 무덤이 있는 곳.
6.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나는 천안문 광장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가이드가 일행잃어버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정말 잠깐 사진찍는다고 멈추다 돌아보면 일행들이 저 멀리 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자금성의 태화전 앞

태화전 내부의 황제 옥좌
7. 이화원

세계문화유산인 이화원은 중국 최대규모의 황실 정원인데, 인공호수인 쿤밍 호수가 유명하다.
이 호수를 만들기 위해 퍼낸 흙이 산을 이뤘다고.
두번째 방문지 시안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가 중국의 천년고도이자 진시황의 병마용이 있는 시안이었다.
그 규모와 엄청난 수의 테라코타들을 보고 있자니 경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병마용 입장티켓


저 멀리 보이는 산처럼 보이는 곳이 진시황릉으로 추정된다는 곳
가이드 말로는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저 진시황릉을 발굴하지 않을거라고.
세번째 방문지 난징
난징은 일제의 난징대학살로도 유명한 곳이다.
사진은 없지만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도 들렀다.
그리고 드디어, 자매결연 학교인 동남대학교에 방문했다.
커다란 강의실에 ㅁ자로 된 책상에 둘러앉아 동남대학교 학생들을 사이사이에 두고 앉아서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어라? 학생들이 영어를 잘하네?
나중에 알고보니 영어 잘하는 학생들을 뽑았다더라.
더듬더듬 영어에, 한자까지 써가면서 서로 소통하느라 아주 애먹었다.
(내가 한자로 이름을 쓰니 되게 신기해 하더라.)
가이드가 알려준 이 대학의 중국어 발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둥난다쉐(Dōngnán Dàxué)
마지막 상하이
드디어 마지막 방문도시인 상하이에 도착.
상하이는 근대 개항기에 강제로 개항이 되어서 상하이의 황푸강 주변으로 당시의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东方明珠)
예원(豫園)
예원은 명나라 관료가 아버지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20여 년 동안 지었다는 정원이다.
정말 발디딜 틈이 없이 줄을 서서 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상하이의 맥도날드
저녁을 먹었음에도 밤에 출출하여 학생들끼리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먹자고 하고 나를 포함 몇 명이 맥도날드로 갔다.
주문을 해야하는데 중국어를 모르니 그냥 똑같은 메뉴 지정하고 이얼싼쓰 플러스 이얼싼쓰만을 반복하여 열 몇개를 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게 신기했는지 중국인 알바들 몇 명이 구경하러 기웃거리더라.
이 때의 경험은 지금도 추억으로 남는다.
1997년은 김영삼 정권이었고, 중국은 장쩌민.
92년 한중 수교 이후 조금씩 가까워지던 시기이다.
당시 기억으로 총 비용이 100만원 정도였던거 같은데 그 중 절반은 학교에서 지원을 해줬다.
그리고 그 해 말 우리나라에는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당시 이곳저곳 입장티켓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