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Quick Summary)
- 생활 에피소드: 로컬 펍 가라오케에서 Michael Bolton 노래를 열창해 현지인의 감탄을 자아낸 일, 대우 마티즈를 극찬하던 호스트 패밀리
- 2002 월드컵: 런던 트라팔가 광장을 뒤덮은 태극기와 붉은 악마의 물결을 먼발치에서 체감
- 세금 폭탄 소동: 한국에서 배송받은 국산 담배에 14만 원 상당의 세금이 부과되어 지역구 의원에게 탄원서를 썼다 반송당한 일
- 영국 문화와 의료: 감기에는 아스피린만 처방하는 NHS 무료 진료 체계와 호스트 파더의 특제 밀크티 레시피
- 귀국: 7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마주한 서른 살의 막막함
1. 영국 일상의 다채로운 에피소드
① 동네 퀴즈 대회에서의 굴욕
호스트 마더 준(June)이 마게이트 지역 주민 퀴즈 대회에 나를 데려갔다. 아시아에서 온 나를 배려해 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출제된 문제 중에 일본에 관한 문항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생처음 들어보는 일본 지명과 문제라 맞추지 못하고 헤매자 준이 “이웃 나라인데 그것도 모르니?”라며 핀잔을 주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열도 지리를 꿰고 있을 리 만무했던 나는 내심 빈정이 상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② 미국차 마니아 사위와 대우 마티즈
호스트 패밀리의 사위는 유별난 ‘미국차 마니아’였다. 하루는 집 앞에 1열 앞좌석이 길게 이어진 벤치 시트에 보닛이 길게 뻗은 클래식 머슬카를 끌고 나타났다. 그는 브레이크 패드까지 자기가 직접 DIY로 갈았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인건비가 비싼 영국답게 차주 스스로 경정비를 마치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고, 서점마다 차종별 정비 매뉴얼이 잘 나와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면 호스트 파더 데니스(Dennis)의 애마는 놀랍게도 한국 대우자동차의 마티즈(Matiz)였다. 우핸들 수동 모델이었는데, 데니스는 차가 작고 야무지며 연비가 최고라며 탈 때마다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마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되어 수출된 차량이었던 것 같다).
③ 공테이프 구매 불발 소동
라디오 음악을 녹음하려 문구점에 들러 당당하게 “Blank tape”을 달라고 외쳤으나 점원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카세트라는 말을 빠뜨려 접착용 스카치테이프로 오인한 것이다. 적어도 “Blank cassette tape”이나 “Blank cassette”라고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다.
당시 라디오에서 귀가 닳도록 나오던 노래는 아토믹 키튼(Atomic Kitten)의 The Tide Is High였다.
④ 로컬 펍의 가라오케 나이트
동네 펍에서 ‘가라오케 나이트(Karaoke Night)’가 열리던 날,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의 명곡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가사를 달달 외워 무대에서 열창했다. 완창 후 화장실로 들어서자 한 짧은 머리의 영국 남자가 “너 학생이냐? 어느 대학 다니냐? 노래 진짜 끝내주게 잘 부른다. Bloody hell!”이라며 감탄을 쏟아냈다.
학교 파티가 열렸던 또 다른 날에는 한국인 동생 원과 함께 본 조비(Bon Jovi)의 Always를 듀엣으로 맞춰 불렀는데 반응이 대단했다.
⑤ 원의 호스트 패밀리 아들 결혼식
한국인 동생 원의 호스트 부부인 댄과 조안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원, 준, 그리고 나까지 식장에 참석했다. 예식장에 도착하자 원이 내 귓가에 대고 “형, 신부가 전직 스트립 댄서 출신이래요…”라고 귀띔해 깜짝 놀라기도 했다.
피로연장 한쪽에 마련된 바(Bar)에서 하객들이 직접 돈을 내고 술을 사 마시는 낯선 방식 속에서, 세 사람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어색하게 서 있다가 조용히 택시를 불러 돌아왔다.
2. 2002 월드컵의 열기와 인종차별의 씁쓸함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영국 거리의 꼬마들이 먼저 “한국인이냐?”라며 아는 체를 해올 만큼 대한민국 축구의 위상은 대단했다.
6월 22일 한국이 스페인을, 터키가 세네갈을 꺾고 나란히 4강 신화를 달성한 직후 런던 트라팔가 광장은 태극기와 터키 국기를 둘러멘 축구팬들로 가득 찼다.


태극기와 터키 국기로 뒤덮였던 트라팔가 광장

반면 차창 밖으로 동양인 비하 발언을 툭 던지고 지나가던 10대 백인 청소년들과 맞닥뜨려 거칠게 항의하며 대치했던 일이나,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을 때 2층 창문에서 키득거리며 돌멩이를 던지던 동네 꼬마와의 시비 등 타국에서 마주한 씁쓸하고 불쾌한 차별의 순간도 공존했다.
3. 살인적인 담뱃값과 세금 폭탄 소동
2002년 당시 환율 기준 말보로 레드 한 갑 가격은 £4.45(한화 약 8,300원) 에 달했다. 한국 담뱃값이 1,500원~2,000원이던 시절이라 주머니 사정에 치명적이었다.
출국 직전 금연을 결심했으나 타향살이의 스트레스 속에서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 친구에게 국산 ‘디스(THIS)’ 담배 한 보루를 국제우편으로 부탁했다.
첫 번째 택배는 무사히 받았으나, 두 번째 발송 시 품명에 “양말(Socks)“로 기재해달라는 신신당부를 잊고 친구가 정직하게 “Cigarette“이라고 적는 바람에 영국 관세청으로부터 세금 납부 통지서가 날아왔다.

영국 세관에서 발송된 세금 부과 통지서
부과된 세금은 무려 £78.51(한화 약 14만 원) 이었다. 2만 원짜리 담배에 14만 원의 세금이 붙자 억울한 마음에 관할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구구절절 탄원서를 보냈다.

지역구 의원의 정중한 거절 서한
정중한 친필 서한으로 “정당한 조세 법령에 따른 부과이므로 감면 불가”라는 답장을 받았고, 결국 소포는 한국으로 반송되었다. 이후에는 저렴한 롤링 타바코 연초 잎을 사서 쉬는 시간마다 필터도 없이 종이로 직접 말아 피우는 촌극을 겪었다.
4. 영국식 식단, 밀크티, 그리고 NHS 무료 의료 체계
- 저녁 식단: 기름진 로스트비프와 그레이비소스, 금요일의 피시 앤드 칩스가 주를 이뤘다. 가장 입에 맞았던 메뉴는 인디카 쌀밥에 비벼 먹던 차가운 ‘콜드 치킨 커리’였다.
- 호스트 파더의 밀크티: 저녁마다 데니스가 믹스커피 빛깔로 달콤하고 부드럽게 타주던 특제 밀크티는 쌀쌀한 바닷바람의 한기를 녹여주는 최고의 위안이었다. 호텔 애프터눈 티보다도 거실 소파에서 마시던 그 홍차가 단연 최고였다.
- 런던 유료 화장실: 지하철역 화장실조차 동전을 넣어야 하는 유료 문화 속에서, 대형 서점의 무료 화장실 덕에 위기를 모면하며 동전 소지의 중요성을 배웠다.
- NHS 병원 진료: 심한 편도선염으로 끙끙 앓다 방문한 동네 NHS 보건소. 외국인 학생임에도 진료비는 전액 무료였으나, 처방전은 허탈하게도 일반 아스피린 몇 알이 전부였다. 약물 처방을 아끼고 자연 치유를 중시하는 서양식 의료관을 직접 체감한 순간이었다.
5. 7개월의 여정을 마치며: 다시 오른 귀국길
출국 당시 기장의 영어 기내 방송을 자막 없이 이해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떠났으나, 7개월이 지난 귀국편 비행기 안에서도 기내 방송은 여전히 아득했다. 전화 영어의 벽을 넘지 못해 귀국편 항공권 예약조차 호스트 마더 준에게 부탁해야 했다.
떠나는 날 역까지 차로 바래다준다던 준이 갑작스레 택시를 불러주는 바람에, 잔돈이 빠듯했던 나는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무거운 이민가방을 끌고 마게이트역을 거쳐 런던 빅토리아역, 그리고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기체 결함으로 지연 출발을 겪으며 나리타 환승 비행기를 놓칠 뻔한 아찔한 위기를 넘긴 끝에 무사히 대체 환승편에 올랐다.

출국길 히드로공항 전경
창문 아래로 서울의 반짝이는 야경이 펼쳐지는 순간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 서른 살 백수로 돌아온 현실의 무게와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막막한 고민이 가슴 깊이 차올랐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외국인 유학생도 영국의 NHS(국가의료서비스)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A. 일정 기간 이상의 정규 학생비자를 소지하고 NHS GP(General Practitioner)에 등록한 경우, 기본 진료비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약국 처방 약값이나 치과 진료 등은 별도 부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Q2. 해외 유학 중 한국에서 담배를 우편으로 받아도 되나요?
A. 대부분의 국가는 담배와 주류 등 기호품에 엄격한 세금을 부과합니다. 특히 영국의 담배 소비세는 매우 높아 우편 발송 시 정식 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제품 가격의 수배에 달하는 관세가 부과되거나 압류·반송될 수 있습니다.